story

한국과학창의재단이 걸어온 길

1972~1981

2. 한국과학기술진흥재단의 출범

1971년 정부는 과학기술처 진흥국 내에 ‘과학기술풍토조성과’를 신설하고 과학기술 풍토조성사업을 적극 모색하면서 과학기술 진흥을 뒷받침할 사회풍토 조성 전담기구의 필요성을 인식했다. 하지만 따로 새로운 기구를 만드는 대신 대통령이 직접 설립한 기존의 과학기술후원회를 확대·개편해 효율적으로 활용하는 것으로 기구 운영의 방침을 정했다. 이에 따라 과학기술후원회는 정부의 협의를 거쳐 1972년 한국과학기술진흥재단으로 재탄생하며, 정부의 지원을 바탕으로 보다 활발하게 과학 대중화를 위한 사업을 수행할 수 있었다.

매스미디어를 통한 과학기술 풍토조성 세미나
1974. 08. 23 초·중등학교 과학교육 세미나

이후 재단은 1973년에 박정희 대통령이 연두기자회견을 통해 주창한 ‘전 국민의 과학화 운동’을 적극 추진해 나갔다. 정부로부터 과학적 생활풍토 조성사업을 위한 과학지식 보급운동을 일임 받은 재단은 과학적 생활풍토를 조성하기 위해 각종 토론회에 참가해 그 중요성을 널리 알려 나갔다. 특히 1973년 3월 전주공설체육관에서 열린 ‘전 국민의 과학화를 위한 전국교육자대회’에서는 과학화 방법론을 놓고 열띤 토론을 전개했다. 건국 이래 처음으로 국내 교육계가 한자리에 모여 과학화를 위한 토의를 전개시킨 이 대회는 전 국민에게 과학기술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동시에 과학교육 개선책을 제시해 과학화 운동에 새로운 전기를 마련했다고 평가 받고 있다.

재단은 효율적인 목표 달성을 위해 사업내용을 다양화했다. 기존 과학필름 라이브러리를 확충해 과학 필름 도서관을 설치하고, 해외 우량과학영화를 번역해 전국의 초·중·고등학교에 대여했다. 과학문고 발간 및 보급도 발간 부수를 크게 늘렸다. 또한 재단은 전 국민의 과학화 운동을 심화시키기 위해 과학기술자의 지방순방강연과 학생과학 콘테스트, 소형과학영화 콘테스트, 과학기술전시 활동 지원 등의 사업도 연이어 펼쳐나갔다. 1970년대 중반부터는 중·고등학교 과학교사를 위한 세미나를 정기적으로 개최했다.

1977. 03. 29 과학기술처 회의실에서 열린 장학금 운영위원회

특히 재단은 정부가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와 함께 추진한 새마을기술봉사단을 지원하며 농어촌 지역에서 과학화 운동을 전개했다. 특히 정부는 정년퇴임한 교수들을 중심으로 새마을기술봉사단을 결성하여 소득증대사업을 매개로 과학기술 확산을 꾀했는데, 재단은 새마을기술봉사단이 기술 지도를 펼치는 농어촌을 찾아가 평소 농어민들이 접하기 어려운 과학영화를 상영하거나 생활 속에서 과학화를 실천할 수 있도록 강연을 하는 방식으로 이들을 지원하였다. 나아가 농어촌 학생들이나 청소년을 위해 과학실험을 지도하거나 과학문고를 배포, 전국적으로 과학기술과 과학의 생활화를 확산시켜 나갔다.

1968. 04. 21 제1회 과학의 날 기념식

이외에도 재단은 가정의 살림을 이끌어가는 주부가 일상생활을 합리적이고 과학적인 태도와 의식으로 영위하는 것이 전 국민의 과학화를 기하는 첩경이라는 판단 아래 1973년부터 한국일보사와 함께 서울·부산·광주 등 대도시를 순회하며 주부생활과학강좌를 개최했다. 한편 재단은 전 국민의 기술 습득을 촉진하기 위해 초·중등학교에 어린이 기능장제도를 창설하고, 전국 초·중·고교 22개교를 과학시범학교로 선정해 산학협동을 제도화했으며, 장학금 제도를 운영해 많은 학생들에게 이공계에 대한 관심을 촉진시키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