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1년 정부는 전 국민을 포괄하는 과학기술 국민이해 증진사업을 범국가적 차원에서 추진해 나가기 위해 「과학기술진흥법」을 개정하고 이듬해인 1992년 6월 과학기술 국민이해 증진사업의 연속성과 전문성 등을 확보하기 위해 동법 시행령 제20조에 의거해 과학기술 국민이해 사업 전담기관으로 한국과학기술진흥재단을 지정했다. 이에 따라 재단은 1980년대의 주요 활동이었던 청소년 과학화사업에서 벗어나 1992년 이후 과학기술 국민이해 증진사업 중심으로 거듭나게 되었으며, 복잡하고 다양한 과학기술과 과학기술 정책을 국민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알리는 역할을 중점적으로 수행해 나가기 시작했다.
재단은 1991년부터 일반 국민이 과학기술에 대해 이해할 수 있는 활동을 크게 강화하고, 과학기술 관련 행사에 일반 국민이 참여할 수 있도록 문호를 활짝 열었다. 특히 언론매체를 활용해 과학기술의 미래와 업적에 대한 홍보를 강화해 과학문화 관련 심포지엄과 여성을 위한 과학대중화 심포지엄, 한국과학문화단체 공동 학술 심포지엄 등을 연이어 개최했다.
이와 함께 재단은 과학기술과 다른 분야와의 교류 증진에 힘써 과학기술과 예술을 연계하기 위한 다양한 노력을 기울였다. 그 결과 1991년과 1992년, 1994년, 1996년에 ‘과학+예술전’을, 1993년과 1995년, 1998년에는 ‘과학+예술 세미나’를 개최했다. 1993년에는 ‘과학기술+정치 세미나’를 개최했다.
또한 재단은 1995년 4월 대전 엑스포과학공원에서 초등학생 500명과 가족 등 총 2,000여 명을 초청한 가운데 가족과학축제의 시초가 된 ‘제1회 전국과학축전’을 성공적으로 개최했다. 전국과학축전 개최는 일반인들이 참여하는 성공적인 과학 축제의 전형을 처음으로 보여줬다는 점에서 매우 큰 의미를 갖는 행사였다. 최초의 과학놀이 중심의 가족 단위 과학행사로 평가 받은 전국과학축전은 이후 다양한 형태의 과학축제로 계승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외에도 재단은 과학영화와 비디오 개발에도 많은 힘을 쏟아 해외 우수과학영화 100여 편을 도입해 교육방송을 통해 방영했으며 케이블 TV가 출범한 이후에는 ‘생활 속의 첨단과학’ 3편을 제작해 방영했다. 1990년대 중반에는 ‘노벨상이 보인다’를 제작해 방영하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정년퇴직한 교수, 연구원들로 구성된 원로과학기술자문단을 확대 개편한 과학기술봉사단 활동을 지원했다. 과학기술봉사단은 원숙한 경륜과 지식을 바탕으로 산업기술과 연구개발 등에서 과학기술을 전수하고 협력을 아끼지 않았다.
아울러 재단은 1995년 우수과학도서 보급 사업을 한 단계 더 발전시켜 ‘한국과학기술진흥재단 추천도서’ 제도를 도입했는데, 이는 단순한 구매 보급에서 벗어나 사회적 지명도를 가진 우수과학 도서를 선별하고 권장하는 것으로 활동에 의미를 더했다. 제도는 선포하자마자 우수과학도서 인증을 받기 위해 총 48개 출판사에서 무려 132권이나 되는 과학도서들을 후보로 접수했을 정도로 큰 반향을 일으켰다.
또한 1996년부터는 기존 출판 사업이 연도 단위로 이루어져 연관성이 없다는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해 도서출판 사업 전체를 ‘교양과학도서’ 시리즈로 통합하기도 했다.